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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ama 작성일20-10-16 12:29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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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유플러스가 두드러지지 않는 LG유플러스 브랜딩 공간
MZ세대의 브랜드, 체험으로 공간 채워

LG유플러스가 개설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의 내부모습 2020.10.15. 뉴스1 © News1 김승준 기자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LG유플러스가 회사가 말하고 보여주고 싶은 걸 전하는 기존 홍보가 아닌 MZ세대의 취향에 맞춰 소통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LG유플러스가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을 서울 강남역 한복판에 열었다고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기자 설명회에서 밝혔다.

'O며든다'는 말은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TV조선 미스터트롯 톱7 김희재가 '희며들다'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유명해졌다. 어떤 대상에 대해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애착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LG유플러스의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취향과 콘셉트에 맞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LG유플러스의 장점을 알아가고 애착을 갖도록 '엘며드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LG유플러스 일상비일상의틈 건물 외벽의 층별소개, LG유플러스의 브랜딩 공간이지만, LG유플러스에 대한 언급이 없다. 2020.10.15 © 뉴스1 김승준 기자파워볼

이날 설명회에서 김새라 마케팅그룹장은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오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게 숙제였다"며 "통신사에 대한 선입견이 강해서 깨기 어려웠다. 그걸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고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에 개장한 복합문화공간은 'LG유플러스의 공간'이라는 점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간을 이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2층의 실시간 바다를 보여주는 미디어 월(벽) 옆에 LG유플러스 네트워크가 쓰였다는 설명이 작게 들어가는 식이다.


LG유플러스가 개설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의 내부모습 2020.10.15 뉴스1 © News1 김승준 기자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426번지에 위치한 일상비일상의틈은 LG유플러스가 '고객경험혁신 주도'라는 가치를 내걸고 개설했다. LG유플러스 5세대(5G) 캠페인인 '일상을 바꿉니다'의 개념을 확장해 이용자의 일상과 비일상의 틈 사이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미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서울 강남역 일대로 장소를 선택한 것을 넘어, MZ세대가 오고 싶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그들에게 익숙한 브랜드로 채웠다.


LG유플러스가 개설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의 내부모습 2020.10.15 뉴스1 © News1 김승준 기자

바다에서 보드를 타는 서핑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글라스하우스, 대화형 사진관 '시현하다',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멤버십 커뮤니티 '넷플연가', 패스트 뷰티 브랜디 스티멍(stimung), 플랜테리어(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룹 마초의 사춘기(machos.sachunki), 구글, 유튜브 등과 제휴했다.

구글과 유튜브를 제외한 다른 제휴업체들은 다른 세대에게는 낯설 수도 있지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MZ세대가 보고 호응을 보낸 브랜드다.

장준영 LG유플러스 브랜드마케팅담당은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무진과 파트너사 MZ세대로 구성해서 그 세대의 눈높이를 맞췄다"며 "개장 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대대적인 마케팅 없이 입소문만으로 반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일상비일상의틈은 별도의 홍보나 마케팅 없이 1만5000명 이상의 MZ세대가 방문했다.


LG유플러스가 개설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의 내부모습 2020.10.15 뉴스1 © News1 김승준 기자

설명회 이후 이어진 공간 체험 행사에서 체험해본 결과, LG유플러스의 설명대로 이름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5층의 사물인터넷(IoT), 영상 체험관을 제외하면 LG유플러스가 마련한 공간이라는 점을 쉽게 알기 어려웠다.

건물에 들어가면 새소리와 마초의 사춘기가 마련한 식물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김 그룹장은 "서울 강남하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자연'과 '힐링'이다"며 "자연을 느끼시면 안될까 생각하게 됐고 실제 들어가시면 새소리부터 들리고 조형물이 아닌 실제 식물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고객 반응을 보면 공기가 다르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가 개설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 4층의 포토존 2020.10.15 © 뉴스1 김승준 기자

1층은 도심 빌딩 숲 한복판에서 만나는 자연을 콘셉트로 삼아 실제 살아있는 식물과 대형 미디어월을 이용한 가상의 숲으로 채워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바깥의 날씨에 따라 가상의 숲의 날씨도 5분 단위로 바뀐다. 그리고 한편에는 유튜브 방송을 위한 미니 부스도 마련됐다.

2층부터 4층은 제휴사 Δ카페 '글라스하우스'(2층) Δ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3층) Δ포토스튜디오 '시현하다'(4층) 등이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5층은 소모임을 열며 LG유플러스의 다양한 5G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콘텐츠도 감상할 수 있는 대화면 미니 극장 등으로 구성됐다. 지하 1층에서는 MZ세대 이슈와 관심을 반영해 분기별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현재는 반려동물을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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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유플러스가 개설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의 내부모습 2020.10.15 뉴스1 © News1 김승준 기자

이 공간에는 '유플러'라는 이름을 가진 직원들이 상주하며 고객의 체험을 돕는다. 이들은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일상비일상의틈 공간 서비스를 개선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직원들이 다가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일부 MZ세대의 특성에 맞춰,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시설 서비스 소개를 받고 이용예약을 할 수 있다.

김 그룹장은 "기존 매장이 상품과 서비스를 알리고 판매하는 장소였다면 일상비일상의틈은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면서 소통하는 공간"이라며 "예상치 못한 브랜드 경험과 확장을 전하겠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가 개설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의 5층 사물인터넷(IoT) 소모임 공간 2020.10.15 뉴스1 © News1 김승준 기자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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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화 전략'으로 한계 극복한 호가스
18세기 영국귀족·미술애호가 자국화가에 인색
대중콘텐츠로 전향·집중하며 스토리텔러 자처
속물권력자 비판하는 연작…서민 위한 판화도
시대 제약·한계 뛰어넘어 기회로 바꾼 혁신가

호가스의 유화 연작 ‘유행에 따른 결혼’ 중 ‘결혼계약’(1743년경). 당시 영국 상류사회에 팽배해 있던 부도덕한 결혼 세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연작은 부와 명예의 맞교환을 전제로 맺은 정략결혼이 희비극적 결말로 가는 단계를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총 여섯 점의 연작 중 첫 번째인 ‘결혼계약’은 공허한 사치와 방종으로 치닫던 부부관계가 결국 파국을 맞는 막장연극의 서막에 해당한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미술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밥으로만 채울 수 없는 풍요와 평화를 안겨줬으니까요. 그림의 힘이고 조각의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할이 이뿐이라 한다면 미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문명을 이끌고, 의식을 뒤집고, 결정적으로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그것을 못 본 겁니다. 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탄생할 때마다 세계경제에는 ‘변화의 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로 ‘혁신’을 주도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미술로 이룬 혁신’의 현장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주헌 미술평론가] 코로나19로 인류의 생명과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경제도 많이 위축되고 있지만 이 어려운 환경도 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자신감, 그런 희망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런 측면에서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1697∼1764)는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가다. 호가스는 당시 영국 화단의 구조적 모순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도저히 성취할 수 없자 그 구조에 매달리기보다 틀 밖으로 뛰쳐나가 성공한 화가다. 그럼으로써 제약과 한계를 기회로 바꿨다. 그렇게 영국미술사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호가스가 살던 당시 영국의 귀족과 미술애호가들은 자국 출신의 미술가들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전통적인 ‘미술 강국’의 거장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다. 이런 배경에는 오래전부터 영국 왕실에서 홀바인(1465?∼1524)이나 반 다이크(1599∼1641)처럼 대륙의 실력 있는 화가들을 궁정화가로 초빙해온 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답답한 현실 앞에서 호가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답을 찾았다. 귀족과 애호가들의 눈에 들기가 쉽지 않다면, 아예 이 ‘레드오션’으로부터 벗어나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고는 고급 예술과는 거리가 먼 서민들을 향해 나아갔다. 이른바 ‘블루오션’을 찾은 것이다. 다른 많은 화가들이 어떻게 해서든 제도 안에서 성공하려고 눈물겨운 투쟁을 벌일 때 그는 그렇게 과감하게 제도에서 벗어났다.

△대중, 조형적 성취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더 관심

호가스는 꼼꼼하게 대중을 관찰했다. 귀족이나 미술애호가들과 달리 대중은 조형적 성취나 세련된 스타일 같은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미술은 시각예술이지만, 대중은 미술작품 앞에서 늘 이야기부터 찾았다.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닌 작품인지 그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를 깨달은 호가스는 스스로 ‘시각예술가’이기 이전에 ‘스토리텔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미술작품의 승부를 조형이 아니라 스토리에서 찾은 것이다. 호가스는 그렇게 콘텐츠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당시 영국에서는 오페라 형식을 빌린 서민적인 음악극 ‘발라드 오페라’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또 영웅이 아니라 시민을 주인공으로 한 가정비극이 연극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늘 억압과 모순에 치여 사는 대중은 그렇게 권력자나 기득권자, 속물들을 비판하고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풍자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에 착안한 호가스는 자신의 콘텐츠도 그와 궤를 같이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그렇게 해서 ‘근대의 도덕 주제’라는 타이틀 아래 마치 하나의 도덕 드라마를 보는 듯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중시한 호가스는 자신의 그림이 일종의 연극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 스스로 ‘극작가’와 ‘연출가’가 돼 스토리를 전개하고 이미지를 구성했다. 아무래도 단품으로는 스토리를 다 담기가 어려워 연작을 많이 제작했다. 당시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그의 그림은 대중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스토리로 승부를 봐 정상에 오른 까닭에 그는 화가이면서도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희극작가”란 찬사를 듣게 됐다.파워볼사이트

△극작가·연출가 자처한 호가스…‘유행에 따른 결혼’ 등 연극 같은 연작 제작

여기서 그의 대표작 ‘유행에 따른 결혼’ 시리즈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모두 여섯 점으로 이뤄진 연작이다. 첫 번째 그림 ‘결혼계약’(1743년경)은 정략결혼을 위한 흥정이 주제다. 무대는 어느 백작의 저택이다. 저택 안에서 백작과 상인이 자식들의 결혼 조건을 꼼꼼히 따지고 있다. 맨 오른쪽에 그린 백작은 지금 발을 다쳤음에도 애써 우아한 포즈를 취하며 자신의 가계가 얼마나 대단한지 상인에게 설명하고 있다. 가계는 대단한지 몰라도 그는 지금 돈이 매우 아쉽다. 허영에 들떠 살다 보니 씀씀이가 헤퍼졌다. 그림 맨 왼쪽에 그린 백작의 아들도 허영에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값비싼 프랑스식 패션으로 잔뜩 멋을 부렸고 거울을 보느라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이렇듯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낭비하며 사는 영국 귀족들, 그로 인해 오늘 돈에 ‘아들(가문)까지 파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백작의 아들과 나란히 앉은 처녀는 상인의 딸이다. 그녀는 신랑이 될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곁에 있는 변호사와 시시덕거린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 정략결혼이 가져올 미래의 비극을 예견할 수 있다.

호가스가 그린 나머지 다섯 점의 그림은 이후의 상황을 특유의 드라마식 전개로 보여준다. 신부의 지참금으로 방탕한 삶을 살던 신랑은 바람을 피우다가 성병에 걸리고, 무료해진 신부는 앞선 그림에서 시시덕거리던 변호사와 연애에 빠진다. 이를 알고 두 사람을 덮친 신랑은 결국 변호사의 칼에 찔려 죽고, 변호사는 체포돼 교수형에 처해진다. 남편도 잃고 애인도 잃은 신부는 그 막막한 현실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하고 끝내 자살하고 만다. 당시 영국의 귀족이나 부유층은 이렇듯 정략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가는 이 그림을 통해 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호되게 비판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쾌감을 맛보게 했다.


호가스의 유화 연작 ‘유행에 따른 결혼’ 연작’ 중 ‘러브호텔’(1745). 호가스의 회화작품이 인기를 끌자 대중적 보급을 위해 제작한 판화작품이다. 신부의 불륜 현장을 급습한 신랑이 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고, 살인자가 된 변호사는 오른쪽 창으로 달아나고 있다. 회화작품에서는 인물들의 동선이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대중의 관심을 사고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해도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 화가로서는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영국의 귀족과 미술애호가들은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당시 가난한 서민들은 값비싼 유화를 사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해도 살아가기는 여전히 팍팍하지 않았을까. 아니었다. 호가스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가능한 판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호가스는 인기를 끈 자신의 그림을 판화로 다시 제작해 팔았다. 사실 그는 회화에 입문하기 전, 판화공방에서 먼저 일을 했다. 아버지가 빚으로 5년 동안 옥살이를 할 만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정규 교육 코스를 밟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술자에 가까운 판화공의 길로 먼저 들어섰고, 그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일찍부터 판화가 갖는 대중예술로서의 장점과 잠재적인 가능성을 두루 이해하게 했다. 그러니까 ‘대중화’란 블루오션으로 나아간 이상 호가스는 그 스토리부터 표현 형식, 나아가 미디어까지 일관되게 대중과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실행할 능력 또한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대중이 유화를 사기는 어려워도 판화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판화야 수요만 있다면 같은 그림을 수없이 찍어낼 수 있으므로 유화에 비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장점이 있다. 예상대로 그의 회화가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을수록 그의 판화 또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얼마나 잘 팔렸는지 그 인기에 편승해 그의 판화를 그대로 베껴 파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던 호가스는 의회에 청원을 해 판화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저작권법을 제정하게 했다(1734년 호가스법). 법의 보호까지 받게 된 그의 작품은 유럽 여러 나라에 널리 팔려나갔고, 이후 그의 작품과 유사한 스타일의 시사풍자화는 죄다 ‘호가시안’(a Hogarthian scene)이라고 불리게 됐다.

호가스가 동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처럼 기존의 제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오늘날 미술사가 평가하는 그런 대가의 반열에는 결코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호가스는 애초에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이 모든 게 그의 앞에 놓인 제약과 한계 덕이었다. 그게 새옹지마가 됐다. 그런 점에서 때로 한계는, 한계로 위장한 기회다. 혁신은 빈번히 한계 혹은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

※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희극작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윌리엄 호가스(1697∼1764)는 어린 나이에 판각가의 도제가 돼 판화·삽화기술을 익혔다. 비록 하는 일은 소소했지만 야망은 컸다.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역사화가가 되는 것. 이를 목표로 거의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던 중 우연찮은 기회를 잡는다. 영국 왕 조지 1세의 궁정화가인 제임스 손힐 경의 집에 들어가 소묘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5년쯤 뒤인 1729년에는 손힐 경의 딸과 결혼도 했다. 호가스의 결혼생활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도덕적 교훈을 주제로 화면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꾸민 회화 연작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매춘부의 편력’(1731∼1732), ‘난봉꾼의 편력’(1732∼1735), ‘유행에 따른 결혼’(1743∼1745), ‘새우 파는 소녀’(1740∼1745) 등이 연달아 나왔다. 호가스 스스로 ‘그림으로 쓴 희극’이라 했던 시리즈다. 실제인물을 모델로 세상의 병폐를 날 세워 풍자한 통찰력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학계에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는데, 근엄하게 꾸짖기보다 ‘그렇게 살다간 저 꼴 나기 십상’이라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위트 넘치는 희극에 색을 입힌 듯한 느낌을 줬던 것이다. 덕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기세에 눌려 자국의 예술에 열등감을 갖고 있던 영국문화의 환경 전반을 극복하는 데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그 공적 덕인지 1757년부터 조지 2세에 이어 조지 3세의 궁정화가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비록 역사화가는 못 됐지만 역사는 제대로 쓴 인물로 남았다.


호가스가 그린 자화상 ‘화가와 그의 퍼그’(1745). 호가스는 18세기 영국 화가들이 처한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아예 고급 예술과는 거리가 먼 서민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블루오션’을 찾았다. 시각예술가이기 이전에 ‘스토리텔러’가 되기로 작정하고 작품의 승부를 조형이 아니라 스토리에 걸었다.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 소장.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신화의 미술관’(2020),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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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진압 시도하는 경찰
(홍콩=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지난해 12월 8일 오후 홍콩 경찰이 도심인 센트럴 지역에서 최루탄 발사기를 조준하며 시위대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호주의 대학들이 반정부 시위를 진압한 홍콩경찰의 채용광고를 게재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드니대는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홍콩경찰 채용광고를 지난 12일 잠시 내렸다가 다시 게재했다.

시드니대는 해당 광고 게재가 지난해 홍콩 반정부 시위 때 홍콩경찰이 행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일부 학생들의 비판에 광고를 내렸다.

그러나 광고 내용이 채용광고란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해당 광고를 다시 게재했다.

다만 시드니대는 성명을 통해 "학교가 교내 게재되는 모든 광고의 내용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학생들은 광고가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해야한다"고 밝혔다.

앞서 뉴사우스웨일스대와 시드니공대는 지난 5월 유사한 항의가 들어오자 홍콩경찰 채용광고를 완전히 내렸다.

홍콩경찰의 채용광고 게재 반대 운동을 이끄는 시민단체 호주-홍콩링크는 인권을 유린한 홍콩경찰의 채용광고가 다른 일반 채용광고와 동일선상에서 취급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쿼리대와 멜버른대 등 최소 2개 학교는 홍콩경찰 채용광고를 내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들 대학은 광고 내용을 검토한 결과 관련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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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발언 논란' 두고 공방 계속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등으로 유명한 조정래 작가는 15일 '친일파 발언 논란'과 관련, 이를 '광기'라고 비판한 진중권(57)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해 "사죄하지 않으면 작가 명예를 훼손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나를 비난하고 심지어 대통령 딸까지 끌어다가 조롱했는데, 그 사람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사람한테 공개적인, 진정 어린 사죄를 요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조 작가는 지난 12일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의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되어버린다. 민족 반역자가 된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지만 대부분 언론은 '일본의' 부분만 문맥에 맞게 '일본에' 또는 '일본을'로 수정해 보도했다.

그러자 같은 날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 한다"면서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극우적 경향이 주책없이 발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진 전 교수는 "대통령의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아는데, 일본 유학하면 친일파라니 곧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되어 민족반역자로 처단당하시겠다"고 말해 조 작가와 여권 일부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 연 조정래 작가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조정래 작가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0.10.12
scap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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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작가는 당시 발언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분명히 '토착왜구'라고 그 대상을 한정하고 제한했다"며 "그런데 언론이 가장 핵심적인, 중요한 주어를 빼버리고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전부 친일파 된다'는 문장만 집어넣어서 기사를 왜곡함으로써 이렇게 일파만파 오해가 생기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작가는 전날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서도 진 전 교수가 "무례와 불경"을 저질렀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한 바 있다.

논란이 나흘째 이어지자 진 전 교수도 재반박에 나섰다.

진 전 교수는 15일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려 조 작가의 발언은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토착왜구라 부르는 친일파가 됩니다. 민족반역자가 됩니다.'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혹스러운 것은 자신을 '대선배'라 칭하고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며 '무례와 불경'을 말한다는 것"이라며 "자신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기는 이 권위의식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이어 "법에 호소하는 것은 그의 권리이니 존중해 드린다. 나는 이 진흙탕에 빠지지 않고, 이 문제를 역사철학에 관한 학문적 논쟁으로 승화하는 길을 택하겠다. 독일에서 있었던 '역사학자 논쟁'(Historikerstreit)이 좋은 모델이 되겠다"면서 "고소당한 기념으로 이 작업을 좀 더 진지한 저술작업으로 연결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오전 올린 글에서도 "'토착왜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예 없어 보인다. 그게 과거에 이견을 가진 이들을 '빨갱이'라 몰아서 탄압하던 독재정권의 행태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조 작가를 비판했다.파워볼게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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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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