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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ama 작성일20-09-11 08:22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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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대구의 북성로
일제가 대구읍성 허물어 만든 길
전국 최대 공구골목으로 전성기 누려
IMF 이후 쇠락의 길 걸으며 사람떠나
미술관과 카페 들어서며 다시 활기차

스러져가는 건물과 좁은 골목으로 스산한 분위기가 나는 대구 북성로
[글·사진=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대구 북성로. 1906년 일제가 대구 읍성 북쪽 1.42km를 허물어 만든 길이다. 북성로는 그렇게 역사의 아픔 속에서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대구 최고의 번화가로, 광복 이후에는 사교와 문화의 거리로, 고도성장기였던 1970~80년대에는 전국 최대의 공구골목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 자부심 대단했던 그 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다. 사람이 떠나간 그 거리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활기가 넘치고 있다. 스러져가던 건물에는 미술과 카페가 들어섰다. 을씨년스럽던 거리에 생긴 놀라운 변화였다.파워볼사이트


스러져가는 건물과 좁은 골목으로 스산한 분위기가 나는 대구 북성로


일제강점기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던 ‘북성로’

치욕의 시기였던 1905년. 대구는 자본을 들고 온 일본인들로 넘쳐났다. 대구역이 만들어진 후 역 주변으로는 역세권이 만들어졌고, 일본 자본가들은 성안으로 상권을 확장하려는 욕심을 부렸다. 결국 이듬해 대구읍성을 허물어 신작로를 만들었다. 당시 만들어졌던 거리가 바로 북성로였다.

1911년 2월 발행된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당시 북성로에는 백화점, 철물점, 양복점, 곡물 상회 등 일본인이 운영하는 다양한 가게가 있었다. 대구 최초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했던 ‘미나카이 백화점’이 들어설 정도로 최대의 번화가로 군림했다. 하지만 100개가 넘는 상점 중 조선인이 운영하는 곳은 곡물가게 3곳에 불과했다. 북성로는 일제의 상징적인 수탈장소였던 셈이다.

일제강점기 내내 사람들로 북적였던 이 거리는 광복 이후에도 명성을 이어 나갔다. 일본인 상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기계, 철물, 금속을 취급하는 상점이 속속 들어섰다.


스러져가는 건물과 좁은 골목으로 스산한 분위기가 나는 대구 북성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폐공구를 수집해 팔던 상인이 북성로 서쪽의 달성공원 입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북성로 일대에 쏟아진 군수물자의 물량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구는 전쟁의 피해가 작았기에 전국에서 피란민까지 몰려들어 그야말로 물자와 사람으로 북적였다.

물자와 사람이 몰리는 곳에 문화와 예술이 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피란 온 예술가들이 모인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다방과 음악감상실이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 원로 음악가들이 자주 찾았던 ‘백조다방’, 구상 시인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꽃자리다방’, 이중섭 화가가 담배 은박지에 소 그림을 그렸던 ‘백록다방’을 비롯해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린다’는 내용으로 외신에 소개됐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던 음악감상실 ‘녹향’은 아직도 북성로 골목을 걷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구상 시인과 동화작가 마해송 같은 문인이 자주 이용한 것으로 유명한 ‘화월여관’, 이중섭 화가가 숙소로 사용했던 ‘경복여관’도 허름한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다. 일부는 폐허로 남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도 있고, 다른 상호로 바뀌어 운영 중인 곳도 있다. 비록 시대의 발전에 뒤처져 세월의 더께가 묻어있는 건물이지만, 그런 세월의 흔적을 되짚으며 걷는 것이 북성로가 간직한 진짜 매력이다.


북성로의 분위기있는 카페 모습


북성로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

근현대의 역사를 거치며 화려한 시절을 보낸 북성로. 그러나 국내 최대의 공구골목이자 국내 최고의 기술자가 모여 있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북성로 역시 역사의 굴곡을 피해가지 못했다. 섬유산업의 침체, 검단동 유통단지 조성, IMF 등을 거치며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젊은 기술자가 떠나가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렇듯 쇠락의 길을 걷던 북성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변화의 물꼬를 튼 곳은 2011년 10월에 일제강점기 건축물의 외형을 간직한 채 문을 연 ‘카페 삼덕상회’였다. 당시 삼덕상회는 2대째 운영하던 와이어 철물점을 닫은 채 휴업 상태였다.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카페로 재탄생시켰다. 역사를 간직한 공간을 토대로 새로운 활력을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삼덕상회의 뒤를 이은 것이 ‘북성로 공구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에 미곡창고로 사용했던 일본식 건물. 이후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건물은 많이 훼손됐다. 여러 차례 덧댄 시멘트를 30cm 가까이 들어낸 후에야 목재 마루와 다다미 바닥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였다. 이런 공간에 북성로에서 터를 일군 여러 공구상의 도움으로 공구박물관을 세웠다. 이제 공구박물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북성로에서 가장 ‘핫’하다는 코이커피 카페가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치욕의 역사를 품은 순종황제어가길


논란의 중심에 선 ‘순종황제 어가길’도 북성로에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그가 1909년 전국 순행을 떠나 대구를 처음 방문한 것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길이다. 순종이 다녀간 이 길에 쌈지공원을 만들고, 민족지사 양성소였던 우현서루 터와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광문사 터(현 수창초등 후문 대성사 자리)에도 공원을 꾸몄다. 당시 순종은 대구를 시작으로 마산과 부산 등 남부 도시를 돌았다. 이 순행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독립을 지키려는 조선 의병들의 투쟁을 억누르고, 일제에 순종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제에 굴복한 비극적이고 굴욕적인 어가행렬이었다. 바둑판처럼 종횡으로 엮인 길 북성로. 시간을 흘러 과거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옛것과 새것이 함께 공존하며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머물고, 모여들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근현대의 역사를 거치며 화려한 시절을 보낸 북성로에 자리한 코이커피 건물. 일제강점기에 미곡창고로 사용했던 일본식 건물로, 공구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최근 북성로에서 가장 ‘핫’한 카페가 들어섰다.


여행메모

△가는길= 서울이나 부산 등에서는 대구까지 고속열차(KTX)를 타고 가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하다. 서울에서 버스를 탄다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버스를 타면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자가용으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북대구IC로 나가면 갈 수 있다. 부산에서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구부산고속도로 수성IC에서 빠져나가면 된다.

△먹거리= 중구 동산동에 있는 성주 숯불갈비 식당, 소 생갈비 전문점이다. 갈빗살에 붙은 살코기를 떼어내 숯불에 구워 더 맛있는 갈비를 즐길 수 있다. 서구 내당 3동의 무침회 골목에는 이름난 무침회 식당이 여럿 있다. 그중 똘똘이 식당은 삶은 오징어와 우렁이, 무채, 미나리를 넣고 특제 양념과 버무려 옛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납작만두와 함께 먹으면 매운맛을 중화시켜주고 고소한 맛은 배가 된다.

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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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직장인이 예상하는 평균 퇴직연령은 49.7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시스
직장인이 예상하는 본인의 퇴직 연령은 49.7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4년 전 동일조사 당시 50.9세로 조사된 것에 비해 1.2세 낮아진 것이다.

11일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직장인 530명을 대상으로 ‘체감 정년과 노후준비 현황’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몇 세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질문에 전체 응답자 평균은 49.7세로 집계됐다. 법정 정년(60세)에 비해 10년 정도 이른 것이다.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퇴직 연령은 연령대와 비례해 높았다. 20대 직장인이 예상하는 퇴직 연령은 평균 49.5세, 30대는 평균 48.6세, 40대 이상의 직장인은 평균 51.6세 정도에 정년퇴직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현재 직장에 법정 정년까지 근무한 직원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도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39.4%에 불과했다.

체감하는 정년연령이 낮아지면서 정년퇴직 이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직장인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퇴직 이후(노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비정기적으로 짧게 근무하는 알바(소일거리)를 하고 싶다’는 응답자가 36.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기적으로 하루 8시간 이하로 일하고 싶다’는 직장인이 32.8%로 다음으로 많았다. ‘계속 하루 8시간이상 일하고 싶다’고 답한 직장인도 17.0%로 조사됐다.

반면 ‘정년퇴직 후에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직장인은 13.6%로 10명중 1명 수준으로 가장 적었다.

직장인들은 정년퇴직 이후(노후) 생활비로 한 달 평균 177만원을 예상했다. 예상하는 노후 생활비는 연령대와 비례해 높아졌다. 20대 직장인은 한 달 평균 155만원, 30대는 평균 182만원 40대 이상 직장인은 한 달 평균 196만원이 필요할 것이라 답했다.

이에 현재 정년퇴직 이후를 위한 준비(노후준비)를 하고 있는 직장인이 절반(53.2%)에 달했다.

노후준비 방법(복수응답) 중에는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이나 투자를 하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67.7%로 과반수이상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건강한 노후를 위해 건강관리(체력관리)를 하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29.8%로 많았고, ‘경제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알바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도 28.0%로 상대적으로 많았다.

‘노후 일자리를 위해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22.3%)’ 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19.9%)’, ‘노후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취미나 특기를 만들고 있다(14.9%)’ 순으로 답변이 높았다.

변지성 잡코리아 팀장은 “평균수명은 길어지고 체감정년은 낮아지면서 정년퇴직 이후에도 경제활동을 계속하면서 활동적인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면서 “알바시장에도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동행복권파워볼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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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있고 주거는 없다 ④] 어느 세입자의 이야기

한국의 부동산 대책은 왜 중산층 대상 서울 수도권 아파트 임대차 시장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지 주택시장의 형성과 기원에서 그 역사-구조적 맥락을 살피고, 이를 둘러싼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재구성 되는지 짚어본다. 나아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단기대응을 넘어 새로운 주거체제를 모색한다. - 참여사회 <편집자말>

[마민지]


▲ 영혼까지 끌어 모아, 월세 탈출!
ⓒ 이미지투데이

프리랜서 7년 차, 30대 비혼 여성. 12년 동안 아홉 개의 월세방을 옮겨 다닌 이사의 고수이자, 적금은 깨더라도 주택청약 저축만은 최후의 보루로 여길 줄 아는 현명함의 소유자. 영화제 수상 상금으로 학자금 대출 절반은 상환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일명 '흙.수.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7평 원룸에 살고 있으며 옥탑이나 반지하가 아니라는 점, 수도권 출신이라는 태생적 조건이 더해지면 나는 부동산 시장의 '꼬리 칸'과 '3등석'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한쪽 벽에서 다른 벽에 닿을 수 있는 나의 집은 '집'이라기보다 그저 '방'에 불과했다. 나는 '방'이 아닌 곳에서 살기를 갈망했다.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살기 시작한 이후로 늘 냉장고 팬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쳤고, 빨래를 하면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건조대를 피해 다녀야 했다.

유튜브를 보며 요가라도 한 번 하려면 건조대를 침대 위로, 싱크대 앞으로, 화장실 안으로 이동시켰다. 작고 소중한 자기만의 방은 나에게 자유를 허용했으나, 그 자유가 고작 이만한 크기라는 실체적 진실은 나의 자존을 비웃었다.

대출은 가난을 타고

연말이 되면 예술인들의 보릿고개가 시작된다. 여름철 개미처럼 모은 돈을 겨울철 월세와 난방비로 탕진하고 나면, 주택 청약 저축을 깰 것인가 말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냉장고가 터질 것처럼 소리를 내다가 불쾌한 전자음을 끝으로 잠잠해졌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미래의 나를 위해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이번 계약이 종료되면 더 이상 월세는 사양한다. 그리고 '방'이 아닌 '집'에서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리라.

'버팀목❶', '중기청➋', 은행별 전세 대출 상품… 낯선 대출 공부를 시작했다. 청년 주택 정보 카페도 가입했다. 은행도 지점별로 다르다는 이야기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한 군데도 빠짐없이 재직 증명을 요구했고, 4대 보험 없는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는 대출이 불가능하다거나, 가능은 하나 쥐꼬리만큼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나의 재무제표는 초라했다. 대출에 성공했다는 운 좋은 프리랜서의 후기도 가끔 발견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3천만 원 남짓이었다.

빠르게 마음을 정리하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홈페이지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흙수저'인 내가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LH청년전세임대주택' 뿐이었다. 최대 1억2천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가난을 증빙하기 위해 온갖 서류를 준비하는 일은 이미 익숙한 터. 접수를 완료하고 발표가 언제 나오는지 문의하길 몇 차례, 수개월의 기다림 끝에 '존버'는 승리한다. 문자가 날아왔다. 나는 월평균 소득 80% 이하 가구로서 4순위에 해당하여 마침내 대출 승인을 받았다.➌

기쁨도 잠시, 전세 매물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대출 상품이 늘어나면서 월세 수요자들이 전세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최대 대출 금액을 기준으로 전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세 8천만 원 오피스텔은 '중기청' 대출을 기준으로 1억에 20만 원, 전세 1억2천만 원 다세대 투룸은 '버팀목'과 'LH전세' 대출 기준으로 1억5천만 원에 15만 원 반전세 매물로 변신했다. 1억2천만 원 예산으로는 원룸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물 찾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영혼까지 끌어 모아, 월세 탈출!
ⓒ 이미지투데이


그리하여 영혼까지 끌어모아 예산을 늘려야 했다. 이자를 30만 원씩 내면서 월세까지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통장을 탈탈 털어 예산을 1억4천으로 늘렸다. 잔고는 0으로 수렴했지만, 나는 간절히 투룸에 살고 싶었다.

빨래 건조대를 놓아도 동선을 방해받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반려묘의 화장실 냄새를 침대에서 맡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에 창문이 있어 환기가 되는 집을 원했다. 그렇게 북으로, 다시 북서로 지역을 넓혀 나갔다. 서울의 끝자락에 닿아서야 볼 수 있는 매물 수가 늘어났다.

'영끌' 매매는커녕 '빚투➍' 전세로의 탈출도 꿈같은 소리인데, 2030세대가 아파트 막차에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차마 나에게 알리지 못하고 집을 산 친구들이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결혼한 친구 중에서도 자가를 보유한 경우가 없었다. 신혼부부 가운데서도 양가의 도움을 받고 '쌍끌이 대출➎'을 감행할 수 있는 '금수저'만이 아파트 막차에 오를 수 있다며, 격분한 회사원 친구들의 대화가 오갔다.

매물을 보는 중에 매물이 나가고, 'LH전세'는 까다롭다며 계약을 파기 당하는 등 사건 사고가 반복됐다. 월세로 살아야 하나, 투룸을 포기할까,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달 동안의 사투 끝에 나는 지하철역에서 15분 떨어진, 언덕 중턱에 위치한 투룸 다세대 주택을 만났다. 이곳은 '방'이 아닌 '집'이었다. 벽지를 뜯고 보니 한쪽 벽은 누수로 인해 곰팡이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계약 뒤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30대 비혼 친구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세로 독립한 운 좋은 케이스다. 회사에 다니는 수도권 출신들은 대부분 캥거루족으로 부모님과 살고 있고, 비수도권 출신은 월세살이를 면하지 못했다.

적금을 탈탈 털고 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을 받으면 출퇴근 왕복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고시원 크기의 원룸 전세는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부모님이 보증금을 보태줄 형편이 아닌 이상 원가족과 살며 목돈을 더 모으거나, 고시원보다는 큰 방에서 살기 위해 월세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모바일 임대료 고지서가 날아왔다. 청구액은 19만6660원. 기존에 내던 것보다 10만 원가량 줄어든 금액이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일시적 할인이 적용된 것인지 의아했다. 오랜만에 청년 주택 정보 카페에 들어가 보니, 기존 이자율 3%가 2%로 낮아졌다는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자놀이가 끝난 것 같다는 댓글을 보니 비죽비죽 웃음이 나왔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숨통이 트였다. 당장 이번 달부터 10만 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자금 대출을 빨리 갚을까? 적금을 하나 더 들어볼까? 이제 요가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실에 앉아 탐욕스럽게 계획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❶ 청년전용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❷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세보증금 대출
➌ 금리와 신청 순위는 2019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2020년 현재 신청 순위 조건이 대폭 변동되었고, 금리는 1~2%대로 인하 적용되었다.
➍ '빚내서 투자'의 줄임말
❺ 부부 2인이 모두 대출을 받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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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마민지님은 독립영화 <버블 패밀리> 감독이자 동양대학교 강사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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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잠실, 한용섭 기자] KBO리그는 최근 몇 년간 광주, 대구, 창원에 신축 야구장이 들어섰다. 서울 고척에 돔구장도 있지만 몇몇 구장들은 아직도 시설이 열악하다. 관중을 위한 편의 시설은 물론 선수들을 위한 공간도, 프로선수들이 뛰기에는 아쉬운 구장도 있다.

류중일 LG 감독은 원정 선수들에게 불편한 부산, 대전, 잠실구장의 아쉬움을 언급했다. 류중일 감독은 10일 취재진과 이야기 도중 "부산은 새 야구장 안 짓나요”라고 물었다. 이어 “선수들이 바닥에도 앉아 있더라”라며 열악한 사직구장 원정 라커룸을 언급했다. 원정팀 라커룸 공간이 좁아 선수들은 라커룸 밖 복도에도 짐을 풀고 앉아 쉬기도 한다. LG는 지난 주말 부산 사직구장 롯데 원정을 갔다 왔다.

류 감독은 “대전구장도 좁은 편이다. 잠실구장도 원정팀은 안 좋다. 두 팀이 홈구장으로 쓰면서 공간이 별로 없다. 홈팀 선수단은 괜찮은데 원정 온 선수들은 불편하다. 옷을 편하게 갈아입을 곳도 마땅치 않다"고 아쉬워했다. 류 감독은 LG 사령탑에 취임하기 전 삼성에서 수십년 뛰면서 잠실구장 원정팀 라커룸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 잠실구장도 원정팀 선수들 일부는 3루 덕아웃 뒤쪽 라커룸 복도에 짐가방을 풀어 놓고, 옷을 갈아입는다.

류 감독은 “진짜 불편하다. 새 야구장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경제가 안 좋은데, 지금 이런 이야기 하면 욕 먹을라나. 경제가 좀 살아나고 새 구장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산 사직구장은 선거철이면 정치권에서 신축구장 건설을 공약으로 언급하지만, 그 때 뿐이다. 리모델링도 여의치 않고, 부산시에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10개 구단 홈구장 중 가장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는 지난해 12월 대전시와 신축 구장인 ‘베이스볼 드림파크’ 조성사업 투자협약(MOU)을 맺고 총 사업비 1392억원 중 43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orange@osen.co.kr


이탈리아 연구진, 유전자 조작 쥐로 그렐린 효과 검증
근감소증 예방·치료법 위한 작용기작 연구 이어갈 예정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그렐린은 '식탐호르몬'으로 불리며 체중을 줄이는 사람들에게 애꿎은 원망을 들었지만, 최근 그레린이 노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무서운 근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온라인으로 5일에서 9일까지 열린 제22회 유럽 내분비학회(ECE 2020)에서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오리엔탈 대학(University of Piemonte Orientale) 과학자들이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사람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은 노화하며 자연스레 근육의 양이 줄어든다. 사람의 경우에는 20대에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한 근손실에 대해서는 근감소증(Sarcopenia)으로 진단된다.

근감소증을 비롯한 노년의 근육감소는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을 높여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운동기능, 균형 조절이 줄어들어 낙상·골절 위험이 커지고, 기초대사량 감소로 인한 만성질환에 악영향을 끼친다. 무기력, 부상 우려에 활동이 줄어들면 우울 등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식탐호르몬' 그렐린은 아실화(acylated), 비아실화(Unacylated) 두 가지 형태를 오가며 몸에 작용한다. 아실화 형태가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해서 식욕을 유발하고, 위장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만든다.

연구진은 "비아실화 그렐린에 관련된 미확인 수용체가 있다는 증거가 점점 쌓이고 있다"며 "비아실화 그렐린이 근육소모를 줄이고 그렐린의 전반적인 작용에 관여하는 것 같다고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비 아실화 그렐린은 골격근 등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화에서 아실화·비아실화 그렐린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피기 위해 그렐린 생산 유전자를 없앤 쥐와 비아실화 그렐린을 많이 만들어내는 쥐를 만들었다. 그렐린이 없는 쥐와 비아실화 그렐린이 많은 쥐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는 쥐들을 키우며 나이가 들어갈 때 근지구력과 근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피면서 이뤄졌다. 운동 기능과 근력변화는 줄에 매달리는 것을 이용해 측정됐다.

연구 결과 비아실화 그렐린을 많이 만들어내는 쥐는 그렐린이 없는 쥐보다 더 나은 운동능력·근력·근육의 구조를 보였다. 심지어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동갑내기 쥐보다 좋은 상태였다.

연구를 주도한 에마누엘라 아고스티(Emanuela Agosti)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비아실화 그렐린 또는 유사한 물질을 노년 근감소증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며 "고령화 사회에서 근감소증은 노년 삶의 질과 정부의 의료비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예방·치료 연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비아실화 그렐린의 수용체와 작용 기작을 규명해 치료법 설계를 위한 후속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파워사다리

이번 연구는 노년 근손실에 대한 기초연구로 치료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근감소증에 대해서는 정확한 원인 진단 그에 따른 생활습관 개선, 필수 아미노산 중심의 단백질 권장량 섭취 등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응책이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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